‘기업 창업가 매뉴얼’ 쓴 실리콘밸리의 代父 스티브 블랭크
린 스타트업 전략···실패 두려워하면 실패
짧은 시간에 제품 만들어 성과 측정해 개선해 나가면 성공 확률 높일 수 있어
페이 잇 포워드 문화···모르는 사람의 도움 요청 받아들이는 게 사회적 책무
성공한 사업가라면 젊은 창업자 도와줘야
블랭크씨는“난 열정적이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다”면서“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사업, 실패한 사업들을 보면서 어떤 게 성공 요인인지 패턴을 분석하는 것으로 성공했으니 대학을
가지 않고도 발견한 재능을 활용한 셈이다”고 말했다. / 이위재 기자
블랭크씨는“난 열정적이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다”면서“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사업, 실패한 사업들을 보면서 어떤 게 성공 요인인지 패턴을 분석하는 것으로 성공했으니 대학을 가지 않고도 발견한 재능을 활용한 셈이다”고 말했다. / 이위재 기자
정문을 지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3~4분쯤 운전해 들어가자 그림 같은 하얀 2층 저택이 나타났다. 샌프란시스코 외곽 페스카데로. 내비게이션도 잘 찾지 못하는 한적한 외곽에 ‘실리콘밸리의 대부’로 불리는 스티브 블랭크(Blank·61)씨 별장(ranch)이 자리 잡고 있다. 마당에는 테슬라 전기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블랭크씨는 스티브 잡스처럼 대학 자퇴 후 억만장자가 된, 실리콘밸리의 전설 중 하나다. 미시간대 입학 후 학업에 흥미가 생기지 않아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 1978년 실리콘밸리에 처음 발을 디딘 뒤 지금까지 벤처기업 8곳 설립에 참여했고, 이 중 4곳을 상장시켜 갑부가 됐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집대성해 지난해 펴낸 책 ‘기업 창업가 매뉴얼(Startup owner’s manual)’은 젊은 벤처 지망자들에게 바이블로 통한다. 그는 또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에서 창업 교육 과정을 주관하며 미래의 스티브 잡스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블랭크씨가 벤처기업 창업과 관련해 강조하는 건 일명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전략이다. 도요타 자동차의 ‘린 제조(lean manufacturing)’란 말에서 차용한 조어다.
요약하자면 아이디어가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빠르게 최소 요건 제품(시제품)으로 제조한 다음 일단 내놓고, 시장의 반응을 보면서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전략이다. 짧은 시간 동안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측정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것을 반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식. 몸집이 가벼운 벤처기업 생리에 딱 맞는 창업 전략이다. 그는 “스타트업(갓 창업한 회사)에는 스타트업에 맞는 방식이 있다. 대기업에서 통한 방식을 무조건 적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린 스타트업 철학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작은 버전이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인 MBA 과정은 대기업에서 배운 방식과 규칙, 과정을 전달하려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다르다. 스타트업에는 실행, 더 빠른 실행이 중요하다. 시작부터 남달라야 한다는 건 강박관념일 뿐 아무런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못한다. 스타트업의 ‘비전’이란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며 고객 검증이 필요하다. 실패는 스타트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겪는 필수적인 과정이며, 스타트업이 실패를 두려워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답은 현장에 있다. 고객과 접촉하는 가운데 기민하게 시제품을 보완하고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은 창업자의 계획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업 희망자들에게 항상 ‘건물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아무리 똑똑해도 고객 반응을 고객보다 잘 알 순 없다.”
―미국에서도 유독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
“독특한 문화 때문이다. 동부나 서부나 실리콘밸리 모태가 되는 군수 연구 단지가 있었다. 다만 뉴욕·보스턴 같은 동부는 부모가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찾아가야 하는 등 보수적인 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스탠퍼드대를 가느라 서부로 온 젊은이들은 대개 부모와 멀리 있어 간섭을 덜 받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 모험이 많은 생활을 하게 됐고 그게 혁신을 가능케 했다. 많은 대기업이 차고에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몇몇 젊은이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갖고 있는데도 혁신에 느린 건 전통을 고집하고 모험을 기피하는 문화 때문이다. 투자가들이 기업 평가할 때 쓰는 핵심 성과 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s)는 어떤 실적을 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런 숫자는 아웃소싱을 한다든가 단기 프로젝트를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상향 조정이 가능하다. 중요한 건 그 과정과 정책이다. 기업이 혁신을 한다고 치자. 실적 지표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나. 그런 게 혁신을 저해한다. 이런 지표들이 혁신을 못 하게 정책적으로 막는 셈이다. 앞으로 누가 성공할지는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혁신을 이룬 회사들을 보면 항상 내부 문화를 역행한 사람들이 있다. 혁신을 위한 지표가 필요하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혁신이 목표라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영화 제작사가 돈을 대고 분위기만 조성해 주고 모든 걸 지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혁신을 위한 지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성공한 실적이 없는 젊은이에게 사업 아이디어만 좋다고 투자하면 위험하지 않나.
“위험을 그냥 감수하는 거다. 실리콘밸리엔 실패한 창업자를 부르는 말이 있다. 바로 ‘경험 있는 창업자(experienced entrepreneur)’다. MIT가 있는 보스턴이 아닌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중심이 된 이유가 그거다. 1970년대 보스턴의 벤처캐피털이 은행 같았다면 서부 벤처캐피털은 도박사 같았다. 동부 투자자가 확실히 결과가 보장되는 프로젝트를 원했다면, 서부에선 포트폴리오가 너무 좋은 사람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이라 보고 부정적으로 해석했다. 실리콘밸리에는 투자한 10가지 중 9가지가 실패로 돌아가도 1가지만 성공하면 된다는 모험가적인 문화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문화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실리콘밸리엔 ‘페이 잇 포워드 (pay it forward)’ 문화란 게 있다(도움을 준 사람에게 되갚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갚는 것). 안면도 없는 사람에게서 도움을 청하는 연락을 받고 도와주는 것을 사회적 책무라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산업이 태동할 때 실패를 경험하는 기업이 허다했다. 그때 페어차일드를 비롯하여 60여개 기업 엔지니어들이 같이 점심을 먹으며 자신들의 경험과 시행착오, 노하우를 나누는 문화가 생겼다. 인도, 중국, 러시아 출신 등 인종적 장벽을 경험한 기업인들도 연합을 결성해 서로 돕기 시작했다. 그 문화가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졌다. 몇몇 기업 간부가 1주일에 한 시간씩 시간을 내 엔지니어들을 만나 조언을 주기도 했는데, 장발의 20대 청년이 당시 55세였던 인텔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 연락처를 전화번호부에서 찾아 조언이 필요하다고 면담을 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젊은이가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지식은 유전을 통해 자동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가 필요한 것 아닌가. 실리콘밸리는 그런 의미에서 학교였다. 혁신을 원한다면 다음 세대에게 페이 잇 포워드 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미 영화 ‘페이 잇 포워드’한 장면. 도움을 준 사람에게 되갚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갚는‘페이 잇 포워드’개념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미 영화‘페이 잇 포워드’한 장면. 도움을 준 사람에게 되갚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갚는‘페이 잇 포워드’개념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한국 창업자들이 외부 접촉을 잘 하지 않는 것과 사뭇 다르다.
“그런 현상은 비판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어떤 아이디어든 결코 사회적 분위기와 주변 도움 없이 성공할 수 없는 만큼 성공한 사업가는 새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도와야 한다. 오만해져선 안 된다.”
―뛰어난 창업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성격이나 자질이 있나.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이다. 뛰어난 화가나 음악가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은 창업가가 될 자질이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들이고 새로운 걸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가 창조됐을 때 어떨지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예술 감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유익하다고들 하지만, 그걸로 커리어를 개발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하는데, 돈 벌 수 있다. 스타벅스 이전에는 커피가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 안 했다. 훌륭한 창업 아이디어들도 처음엔 우습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혁신을 시작하는 단초다. 또 성공한 창업자 중에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꽤 많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스타트업 같은 불안정한 환경은 그들에게 일상인 셈이다. 그런 성장 과정에서 살아남은 경험은 남다른 집중력과 투혼을 갖는 경향이 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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