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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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 열리는 날입니다.

2000년 전 어느 영광스러운 밤에 , 신이 인간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 체념과 절망에 빠진 우리 삶에도 그 같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어둠과 절망이 마침내 깨어지고 빛과 희망이 탄생하는 날이 바로 성탄절 입니다, 갈등과 미움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화합과 사랑이 돋아나는 날이 성탄절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이날을 기뻐하는 것이지요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라는 구절은 기록했지만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는 구절을 입에올리 기 꺼려했던 것은 구약을 믿는 유대인이나 , 이슬람교도 , 심지어 초기 기독교인들 마져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임을 알고난 후 , ” 믿음” 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상황과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이자 탈출구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이외에 천하 그 누구에게도 구원이라는 이름을 준 적이 없다라는 성경 말씀을 상기하면서 ,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 12:2) 라고 성경은 말함니다. 우리의 삶에서 모든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을 통해 어둠과 절망, 갈등과 분노를 극복할 지혜와 힘을 얻으며 희망을 갖고 사랑을 품으며 새해를 맞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마이클 장 전도사, 목회학 석사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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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 용서는 자기를 내어주는 “투자” 입니다 둘 다 자기를 내어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예수 님은 용서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예배드릴 때 내마음 속에서 아직 용서 하지 못한,사람이 있으면 그 예배는 무효라고 예수님은 단언 하였습니다.

기도는 신의 용서와 받아주심을 비는것인데 자기는 용서하지 않고 용서 받을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최선의 복수는 무엇인가 ? 그것은 용서입니다. 세상싸움은 때려 눕힌 자가 이기지만 , 그러나. 성경은 얻어 맞은자가 이긴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원수를 갚은 자는 그 원수와 별차이가 없지만 그러나 원수를 용서한자는 확실히 그 원수보다 나은 인간이기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는 인생에 있어 최대의 투자입니다.

십자가의 언어는 “용서”이기 때문이지요. 웹스터 사전에서 용서 (forgiveness ) 는 주장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to give up a claim) 해석하고 있읍니다. 내가 마땅히 비난하고 정죄하고 요구할 수있으나 그 것을 포기하는 것이 용서 입니다. 할 말 다하고 용서하는것은 말이 되지 않읍니다. 십자가의 언어가 용서라면 ,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더 용서입니다. 그것은 내가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글: 마이클 장 전도사, 목회학 석사

빛과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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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온 “소식” 인 ” 빛”은 시간과 관계 없이 “초속 30만 km” 로 저멀리 달려가지만 , ” 빛” 은 “생명” 이 존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명 에너지와 ” 생명”에 필요한 “입자”를 제공하지요 . 그러나 빛은 현상 세계가 허상임을 알리기 위해 그림자 를 제공하였지만 , 인간은 실제와 자기가 그린 (그림자) 인 인식의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 붙들린 인간은 그래도 빛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한계는 보이는 외면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 인간은 상대적인 시공의 제한 안에서 불변의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빛을 동경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저 보이는 것이 실제요 전부로 인식하고 이 세상에 보였다 사라지는 허상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휘몰아치는 파도는 보지만 그 배후에 있는 ” 힘” 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 그것은 소우주인 내 안에 실제인 “빛” 과 “소금” 이신 그리스도가 존재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1905년 5월 15일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친구인 물리학자 벳소와 대화도중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힌트를 얻었고 그 시점으로부터 우주의 “절대성” 과 ” 상대성” 이 발견되었고 . 비로서 빛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 속도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롬 1:20 에 ” 창세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합니다 .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한 해석의 주체이기에 , 언제나. ‘실제” 와 “인식 ” 사이의 괴리에 빠져 있는 존재임을 인식한다면 , ” 인지부조화 ” 의 함정과 “인식론적 갈등” 에서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요. ^^^ 다시 말하면 “핑계치 못하겠지요 ”

글: 마이클 장 전도사, 목회학 석사

걱정, 근심 그리고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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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 최대 문제 “는 걱정, 근심 , 두려움, 아픔. 그 자체이며 영어로는 (suffering ) 이라 하지요 . 이것이 육체로 오면 고통이요 마음에 오면 “고뇌” 즉 마음고생 입니다.

불안과 외로움, 슬픔과 우울함, 분노와 죄책감. 사실상 우리를 매일 괴롭히는 그 ” 고” 는 느낌이요 실체가 없지요 . 그러나 그것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을 제거하면,”고” 는 없어지지요 . 그래서 아픈것도 허상이요 괴로운 것도 외로운 것도 다 허상이며 우리가 살면서 물 , 공기 , 빛이 없으면, 안되듯이 “고” 도 우리생활에 중요한 일부이며 그림자처럼 매일 따라다니는 이 “고” 를 잘이해하고 다루면 나의 인생이 “고” 로 부터 조금은 자유로워 지는것 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말하기를 “두려움은 바로 두려움 자체라고 말했듯이 나 자신의 부주의와 생각이 만드는 “허상” 은 단지 “현상계” 의 그림자인 “허상세계” 의 일시적인 나타남 인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이 두가지인데 첫째; 육신과 영혼의 고통이요 두번째는 노화로 사망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문제들은 어차피 다 지나가는 바람인 것을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 끝날 것이요 ,시간이 다 해결할 것이지만^^ㅣ

사실상 “죄” 문제 때문에 진정한 나의 ” 생사” 가 달려있다는 것에 촛점을 맞추어 살면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죽음의 필연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 그 길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므로 이루어 지는것이며 그 말씀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고 벹전,1:23 고 말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상세계의 현현인 허상의 그림자 즉( 관념세계) 에서 벗어나 믿음의 실상인 믿음의 주이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남은 삶을 이루어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글: 마이클 장 전도사, 목회학 석사

영적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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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차피 빈손 (홀로)으로 왔다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옛 선조나 과거의 사람들이 덧없이 허무하게 떠나버린 사실들을 기억한다면, 현재 우리가 보고 , 접하는 이 세상은 어차피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현상세계일 뿐인 것을 , 사람들은 기억의 흔적을 되새기면서 과거에 머무르고 또 아쉬워 하면서, 고달픈 인생길의 언덕을 오늘도 넘고 있으매 , 이것을 불교에서는 고해라고 부른다 ,

“인생은 사랑이 있는 고생 ” 이요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인생을 고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랑은 가슴에 담고 , 물질은 손에 들기 때문에 죽을때는 다 놓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지 . 어차피 우리가 밟고 있는 이승은 전반전이요 , 이제곧 후반전이 시작 될터이니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관념 세계를 넘어 후반전을 준비해야 할것이다.

우리가 투쟁하는 이 광야같은 세상은 거대한 쇼 타임이요 , 각자 만든 각본을 출연료 도 없이 연기 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 접고 , 준비된 “각본” 도 없이 후반전으로 들어가야 하는 숨가쁜 스케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것이다.

우리가 보고있는 물질세계는 하나의 현상 세계요 , 그 이면에 본질 세계가 있다는 것 , 지금까지 의 시간은 후반전 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마지막 이라 생각하고 어떤사람은 견디지 못해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는 것은 후반전 이 기다린다 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연속극도 속편이 있고 , 축구도 전반전 다음 에 후반전이 있는것처럼 , 나비가 누에고치안에서 성충으로 자라다가 때가 되면 고치를 떠나 듯 , 우리 인생도 후반전 준비가 끝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각자가 살아온 만큼의 문화와 지식 , 관념세계에 제한되 있지만 실상은 그 이상의 광대한 세계가 있다는것이니 보다 더 넓고 높은 비젼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다는 말이 있듯이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무한한 것이다. 이제라도 보이는 육의 세계에서 안보이는 영적세계에 관심을 두었으면 한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 한정되어 있기에 바닥이 드러나면 허무에 빠지기 쉽고 더 이상의 기대가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실상이라는것이다.

더 늦기전에 이 현상세계를 영적인 관점으로 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마이클 장 전도사, 목회학 석사

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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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려고 뛰어내렸는데 몸이 부서지지 않아 기어이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 내려 죽었다고 하는 이 험난한 세상을 오늘도 조금은(?)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읍니다.

‘왜 사는지’의 해답을 찾기위해서 ^^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죽을 때까지는 산다는,생각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삶이라 한다면 , 믿는이들의 삶은 삶의 “소신”을 넘어 믿음의 “소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모습과 태도 를 가지고 그 삶을 승화시켜 그런 삶에 열매가 빛과 소금으로 보여지고 드러날 때 비로서 살아있는 교회의 역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영과 생명이신 “말씀”은 흐레마로 그 호홉을 통하여 점진적인 계시로, 믿는 이들의 관념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글: 마이클 장 전도사, 목회학 석사

행복과 평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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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봄” 냄새가 짙은 “향기” 를 자아내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읍니까 ?

“청산”은 날보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라 하네, 남에속도 모르고 , 그냥 ” lip service” 하는것 처럼 들리네요 ^^

사람들은 성급한” 만족” 을 위해오늘도 걷고 또 걷고 있어도 끝 내채워지지 않은 욕심으로 인하여 오늘도 몸살을 앓고 있지요 . 그리고 그 못다 부른 노래가 남아있는 것 같아 때로는 마음이 조급해 지기도 하고 ,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건 성급한 만족은 결코 충족될 수 없지요 , 그것은 자기애적 성격 ( narcissistic personality ) 성향의 결과물 입니다.

왜냐하면 성급한 만족은 “욕심” 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채워진다고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큰 욕심만 자라나니 항상 모자라고 부족하지요 . 더 큰 욕심에 휩싸여 갈증과 초초함을 느끼게 됩니다. 욕심은 손에 든 횃불같아서 바람을 거슬려 가면 손을 불타게 만듭니다. 몸과 마음을 불살라 버립니다. 그리고 사람을 끌여들여 몸과 마음을 태우는 불구덩이와 같다는 뜻입니다. 결국 욕심이란 영혼과 정신이 치유될 수 없는 독에 빠지게 하는 것이란 의미인 것입니다. 궁극적인 만족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고후 3:5 :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낳느니라 . 삶에 있어 진정한 가치가 실현될 때 진정한 만족이요 , 그것이 바로 평강이 아닐까요 ^^

글: 마이클 장 전도사, 목회학 석사

순종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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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 is on going process” 우리의 삶은 진행형 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진행 중인 것처럼 우리의 시간은 영원으로 흐르는 동선에 있기에 저높은 곳으로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그 보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육적으로 는 희망이지만 영적으로는 “소망” 즉 주님의 재림하심 을 기다리며 말씀 안에서 새 언약 을 기억하고 그 언약에 ‘순종하는 삶’이 소망의 길이라면 남들은 My way 아니면 High way. 를 가더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소망의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끝이 ‘희망의 성취’라면 믿음의 종착역은 ‘영혼의 구원’에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오.

글: 마이클 장 전도사, 목회학 석사